
第一章 . 약술문(藥術門)의 문도!(門徒)
(2)
부엉!부엉!
밝은 달빛 가운데 나무가 우거진 산에 부엉이 소리가 울려퍼졌다.
이 큰 산의 중턱에는 한 연못이 있었다.
물빛이 너무 맑아 연못 한 가운데 달이 내려온 듯한 이 연못이 바로 요지(瑤池)..!
옛날 주나라 목왕이 서왕모(西王母)와 더불어 노닐었다는 그 연못이었다.
그리고..
요지 근처를 자세히 살펴본다면 요지에서 조금 떨어진 나무가 우거져서 잘 보이지 않는 곳에 지어진 한 초막(草幕)을 볼 수 있을 것이었다.
그 불이 켜진 초막의 굴뚝에서는 무언가를 해 먹었는지는 모르지만 연기가 꾸역꾸역 나오고 있었다.
확실한 것은, 이 초막이 사람이 사는 곳이라는 것이었다.
부스럭
갑자기, 초막 건너편의 연못가의 덤불이 움직이더니, 한 인영(人影)이 튀어나왔다.
백색 무복에 흑발의 청년이었다.
아까 흑의인들을 골탕(!)먹이고 은자(銀子)를 갈취한 그 청년이 틀림없었다.
씨이익!
청년은 얼굴에 괴소(怪笑)를 그리더니, 한 백자병을 들어올렸다.
마개가 단단히 봉해져 있고, 주둥이가 좁고 배가 뚱뚱한 그 백자병에는 누군가가 먹으로 쓴 듯한 글자가 씌여 있었다.
진로(眞露)
글자 그대로 '이슬'이 들어있을 리가 없었다.
당연히 그 백자병에 들어있는 물질은 현대인의 생활의 필수품! 사나이의 로망!
학생들(!)의 입시생활()중의 활력소! 여인네들의 숨겨진 면모를 드러내주는 것!
박커스(Vacchus)가 이것의 주신(主神)인 물건!
.. 바로 술이었다.
청년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크크크.. 약술문(藥術門)에서는 금주(禁酒).. 라!.. 사부님께는 미안하지만 '삼순구식(三旬九食)은 참아도 삼순구주(三旬九酒)는 못참는다'라는 나의 신조에 어긋나는 일이지.. 사부님이 아시면 날 죽이려 드실 것이 자명(自明) 하지만.. 이것만 있으면..!"
청년이 왼손을 펴자, 한 동글동글하고 딱딱해 보이는 환약(丸藥)을 볼 수 있었다.
"파주환(破酒丸)..! 이것만 있으면 술냄새란 없는것이지..! 클클!"
청년은 괴소를 머금으며 술이 든 백자병의 마개를 뽑았다.
뽕
맑은 소리가 밤 공기를 울렸다.
청년은 백자병의 주둥이를 자신의 코에 갖다대고는 숨을 들이쉬었다.
큼큼
익숙한 농익은 술냄새가 청년의 코를 찔렀다.
"... 크앗.. 그래.. 이거지..! '날 어서 마셔주세요'라는 술의 간청이 들리는 듯하구나..! 애간장이 끓는군!"
청년이 술병의 주둥이에 입을 대었다.
청년의 흑발이 달빛을 받아 빛났다.
그 때.
불현듯 청년의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 좋으냐?"
"크앗! 좋다마다! 내가 이 순간을 위해서 죄없는 흑의인들 때려눕히고 돈을 갈취한 것 아니겠어! 그러니까.. 방해하지.......?"
청년은 말을 하면서 이상한 위화감을 느껴 말꼬리를 흐렸다.
요지(瑤池) 주위에 사람이 있던가..?
사부랑 나 외에는 사람은 한명도 못봤는데..?
그렇다면.. 그렇다는 건..!
청년은 등에 소름이 듣는 것을 느끼면서 고개를 홱 돌렸다.
"허헉! 사부님!"
청년이 돌아 본 곳에는 청색무복에 흰 수염을 길게 늘어뜨린 한 나이 지긋한 노인이 서 있었다.
청년의 안색이 저 하늘에 뜬 달처럼 하얗게 되었다.
청년은 비굴한 웃음을 지으며 살며시 손에 든 백자병을 등 뒤에 감추었다.
"헤헤.. 사부님.. 아직 주무시고 계신 게 아니셨군요.."
"그래.. 그건 그렇고 천호야."
천호라고 불린 흑발에 흰색 무복의 청년이 다시 비굴한 웃음을 머금었다.
"헤헤.. 네?"
"방금 네 등뒤에 감춘 그 병은 무엇이냐..?"
비굴한 웃음을 웃던 천호의 표정에 미동이 일었다.
천호는 천천히 손에 들린 백자병을 꺼냈다.
백자병에 씌인 진로(眞露)라는 먹글씨가 달빛을 받아 빛났다.
'제길..!'
".. 헤헤! 사부님! 약술(藥術)이라는 저희 문파(門派)의 이름에 걸맞는 저 먼 동쪽 나라의 영약을 구해 왔습죠! 그쪽 나라에서는 '참이슬' 이라고도 부른다고들 하더군요! 헤헤!"
빠지직
노인의 이마에 푸른 핏줄이 돋아났다.
잠시의 정적이 흐른 뒤, 연못 주위에 날카로운 파공성이 울려 퍼졌다.
후웅
빠악
경쾌한 타격음이 울려 퍼지면서, 노인의 우수(右手)가 천호의 배에 가서 꽂혔다.
"우컥..!"
".. 놈.. 그게 '진로'라는 이름의 영약이 아니라 진로주(眞露酒)인 줄은 노부도 아느니라! 감히 태산같은 스승을.. 아니 태산같은 약술문(藥術門)을 우롱하다니! 용서 못하느니라..!"
"...!"
부스럭
노인이 주머니에서 천호가 곧잘 꺼내고 하던 환약()들과 비슷하게 생긴 동글동글하고 약간 푸른 빛이 도는 환약을 꺼냈다.
환약의 이름은 괴력환(怪力丸)..!
본래 복용자의 근력의 백할까지를 내게 해 줄수 있는 약이었다.
당연히 노인의 괴력환 복용 복적은 자명했다.
술을 접함으로, 문파(門派)의 규율을 깨고, 더욱이 태산같은 사부(師傅)를 우롱한 제자의 죄를 물리적인 방법으로 훈계하기 위한 것임에 틀림없었다.
간단히 말해, 천호를 개 패듯 패기 위함이었다.
"...사.. 사부님! 부디 자비를..!"
꼴까닥
노인은 천호의 미친듯한 만류에도 불구하고 끝내 환약을 목 너머로 삼키고야 말았다.
꾸드득..꾸드득!
약의 효력은 바로 나타났다.
노인의 나이에 걸맞지 않게, 노인의 양팔이 이상한 소리를 내며 , 근육이 붙고, 핏줄이 돌출되어갔다.
".. 사.. 사부님!"
"닥치거라!"
땅에 떨어져 있던 굵은 장작개비를 집어드는 사부를 보며, 천호는 그만 혼절(昏絶)하고야 말았다.
* * * *
".. 으음.."
흙천장이 보인다.
천장이 보인다는 것은.. 난 살아있다는 소리..?
벌떡
천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몸이 뜻대로 움직여 주지 않았다.
".....!"
목을 힘겹게 구부려 자신의 몸을 보니.. 이미 몸은 예전의 건강하던 몸이 아닌, 붕대로 칭칭 감긴 미이라의 몸이었다.
그렇다면, 사부는 정신을 잃은 자신의 몸을 괴력환()의 힘을 빌린 막강한 힘으로 두들겨 팼다는 소리가 되었다.
"갈! 움직이지 말거라! 노부(老夫)의 가르침이 조금 과했구나!"
옆에서 사부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천호는 기가 막혔다.
'.. 과했다? 과했다..? 조금만 더했으면.. 난 지금쯤 황천(黃泉)에서 수영하고 있을 뻔 했는데..'
그 때, 갑자기 사부에게 훈계(!)를 받기 전에 들고 있던 자신의 피같은 백자병에 생각이 미쳤다.
".. 사부님."
"오냐."
"아까.. 술.. 은요?"
"흠흠!.. 흠! .. 버렸느니라! 흠흠! 다시는 그런 물건을 본문에 가지고 오지 말거라! 흠!"
'버려..? 사부가..?'
천호는 붕대가 감겨있는 왼손에 아까까지만 해도 분명히 있었던 파주환(破酒丸)의 감촉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을 느꼈다.
이 쯤되면, 천호가 아무리 천치라 하더라도 능히 추론해 낼 수 있을 것이었다.
하지만 술을 좋아하는 사부가 술을 버릴 리가 없다.
술을 버리지 않았으면 마셨을 것이다.
사부에게는 지금 술냄새가 나지 않는다.
파주환은 술냄새를 지우는 효과가 있다.
지금 내 손에는 파주환이 없다.
이런 논리의 연쇄(連鎖)를 거친 천호가 그 파주환과 술을 사부가 먹었음을 눈치 챈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나쁜 사부..! 그 피같은 술을..! 꼴까닥 마시고 파주환을 먹고 시치미 때다니..!'
그러나, 천호는 잠자코 누워 입을 다물고 있는 수 밖에 없었다.
괴력환의 힘을 빌린 사부의 완력을 자신의 몸으로 다시 시험하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었다.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 라는 먼 동쪽 나라의 관용어가 진가를 발하는 순간이었다.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