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第一章 . 약술문(藥術門)의 문도!(門徒)
(1)
바스락!바스락!
가을산의 유난히 많은 나뭇잎들이 소리를 냈다.
당연히 그냥 소리를 낼 리는 없다.
무언가가 밟고 지나갔으니 소리를 내는 것이 당연했다.
한 백색 무복을 입은 흑발의 청년이 미친 듯이 산 속을 뛰어가고 있었다.
만약 청년 혼자 산속을 미친듯이 뛰고 있다면, 속칭 '광녀'(狂女)아니.. 광남(狂男)이라고 불러야 함이 마땅하지만, 청년의 뜀박질에는 무언가 이유가 있어 보였다.
청년은 정신없이 숨을 내쉬었다.
"헉! 헉! 씩! 씩! 제길! 제길!"
바스락!바스락!바스락!
필사적으로 뛰어가는 청년 뒤로, 또 누군지 모를 두 명의 흑색무복의 중년사내 두명이 청년이 뛰어간 방향으로 뛰어갔다.
코에서 콧물까지 흘려가며 미친 듯이 뛰는 청년과 대조적으로, 흑색 무복의 중년사내 두명의 얼굴표정에는 여유만만함이 아로새겨져 있었고, 별로 힘들어 하는 것 같지도 않았다.
쓰윽
청년은 여전히 미친듯이 달리면서 소매로 콧물을 훔치고, 뒤를 돌아보았다.
"헉! 헉! 으아아! 아직도 오고 있잖아..! 제길!"
청년은 필사적으로 자신의 뛰는 속도를 향상시키려고 노력하는 듯 보였지만, 사실은 뛰는 자세가 더 추해 보일 뿐이었다.
청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흑의무복의 중년인들과 청년 사이의 거리는 점점 좁혀져 갔다.
이제 애처로운 청년의 눈에는 눈물까지 글썽이기 시작했다.
"부처님! 헉! 헉! 앞으로 불공 열심히 드릴테니..! 이상황 좀 어떻게 해줘..!"
하지만 현실은 향 냄새 한번 맡아 본 적 없는 사람이 다급할 때 부처님을 찾는다고 해서 일이 해결 될 만큼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바스락!바스락!
드디어, 청년과 흑의무복인 두명과의 거리가 겨우 두 보정도 남짓하게밖에 차이나지 않게 되었다.
뒤를 살짝 돌아본 청년의 눈에 절망이 어리는 듯하더니, 이상하게도 갑자기 이상한 괴소(怪笑)가 그려졌다.
펄쩍
갑자기 청년이 산길 옆으로 뛰어내렸다.
나무가 없는 큰 공터가 청년의 앞으로 펼쳐졌다.
공터에 진입한 청년은 더 이상 달리지 않고 멈추어 섰다.
씨익!
다시 얼굴에 괴소를 머금은 청년이 청년이 중얼거렸다.
"부처님이 날 구원해주시지 않으면.. 내가 날 구원해야겠군.."
청년은 자신의 바지에 매달아 놓은 천주머니에서 종이에 싸인 무언가 동글동글한 것을 꺼냈다.
종이에는 먹으로 쓴 듯한 세 글자가 씌여 있었다.
조공환(造功丸)
청년은 종이를 벗기고 안에 들어있던 흑색의 동글동글한 환약을 삼켰다.
놀랍게도 환약을 삼킨 청년의 창백하던 얼굴에 화색이 돌기 시작했다.
아니, 그 뿐만 아니라 아까 쫒기던 청년이라고 생각 할 수 없을 정도로 여유를 부리기 시작했다.
탓
곧 뒤쫒아오던 흑의인 두명이 공터에 진입해 청년의 앞에 섰다.
한 흑의인이 미소를 지으며 한 발짝 앞으로 나와 입을 열었다.
".. 갑자기 지나가던 사람을 때린 것에는 거기에 부합하는 합당한 이유가 있겠지..? 그렇지 않다면 네 피로 그 보상을 할 각오를 해라..!"
그런말을 하던 흑의인도 속으로 위화감을 느낄 수 있었다.
'이녀석.. 뭐야..! 왜 웃는 거지..?'
씨익!
청년이 다시 입가에 미소를 그리고는 입을 열었다.
"음! 이유라.. 굳이 이유를 들어야 하겠다.. 이말이시죠. 당신들의 얼굴표정을 보니 그럴 의사가 있다는 것을 알수가 있어요.."
".... 그러하다."
"말하자면..."
"..."
".. 날씨가 너무 좋아서..! 랄까."
이게 무슨 아닌 밤중에 홍두깨같은 소리란 말인가..
흑의인들이 대노한것은 당연한 이치였다.
스르릉!
두명의 흑의인이 허리춤에 차고 있던 칼집에서 넓은 환도(를 빼냈다.
"이노옴...!"
".. 아..아.. 정정하죠. 사실은.. 뒷쪽분 얼굴이.. 너무나.. 때리지 않고는 참을 수 없게 생겼거든요..! 저는 어쩔 수 없이..!"
청년의 말이 흑의인의 분노를 가라앉히는 역할을 수행하지 못했음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흑의인의 얼굴이 붉어지면서, 콧구멍이 벌렁거리기 시작했다는 점을 보아도 그것을 알 수 있었다.
급기야 흑의인은 환도를 든 손을 높이 들어 청년을 향해 휘둘러갔다.
청년에게 절대절명의 위기였다.
"죽어라!"
쉬이익!
흑의인의 환도가 둥근 궤적을 그리며 청년이 있는곳을 베어갔다.
타닷
그러나, 청년의 몸은 환도가 그리는 둥근 궤적을 거의 손가락 하나 차이로 피해버렸다.
흑의인은 몸을 피한 청년의 얼굴에 일순간 사악한 미소가 어리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흑의인이 입을 열었다.
"뭐냐..! 그 갑자기 생긴 괴이한 내공(內攻)은..!"
".. 뭐랄까.. 이제서야 슬슬 '약빨'이 돈다고나.. 할까요?"
그제서야, 흑의인은 아까의 위화감의 정체를 알게 되었다.
아까 쫒을 때의 청년은 시장(市場)에서 노닥거리는 놈팽이들과 다름 없었는데, 지금은 절정 고수의 기도가 느껴졌던 것이었다!
하지만 흑의인은 마음 속의 의문을 애써 잠재우고는 내력을 끌어 올렸다.
위이이이잉
흑의인의 칼이 푸른 빛으로 빛나며 공명하기 시작했다.
".. 갑자기 생긴 내공이 대단하다만.. 과연 이 걸 막아낼 수 있을까..! 먹어라! 수라파쇄도!(修羅破碎刀) 참!(斬)"
후우웅
휘둘러진 흑의인의 칼 끝에서 무형(無形)의, 무언가 투명한, 실타래 같은 검기(劍氣) 같은 것들이 뿜어져 나와, 공터를 유린했다.
콰아아앙!
엄청난 폭발음과 함께 죄없는 공터 주위의 나무들이 쓰러져 나갔다.
그 폭발의 여파는 공터의 흙들을 공중으로 비산(飛散)하게 만들어, 공터의 시야를 한 동안 가렸다.
실로 패도적인 검술이었다.
그러나..
공터의 먼지들이 가라앉은 뒤에도 정작 공격목표였던 청년의 신형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당황한 흑의인의 목소리가 울려나왔다.
"도대체.. 어디로..?"
"전 여기있습니다만!"
갑자기 들어온 등 뒤에서의 청년의 말소리에, 화들짝 놀란 흑의인은 황급히 내력을 끌어올리며 방어자세를 취했다.
그러나.. 오호통재(嗚呼痛哉)라.
이미 때는 늦었다.
뻐억!
칼을 휘두른 흑의인은 등에서 격통을 느꼈다.
바로 대추(大楸)혈 이었다.
대추혈은 명치의 기해(氣海)혈에서 끌어올린 내력을 상반신의 팔, 머리, 몸통의 구석구석에 보내 주는 아주 중요한! 혈이었다.
이 곳을 강하게 가격당한 흑의인은 아무리 기해혈에 내공이 넘치더라도 더 이상 내력을 끌어올릴 수 없게 되어버렸다.
"... 큭!"
그러나,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제 이타(弟二打), 제 삼타가 족족 오고 있었다.
퍼억! 퍼억! 퍼벅! 뚜쉬!
흑의인은 온몸의 중요 혈에 느껴지는 청년의 주먹세례를 느끼면서, 의식을 이 불행한 현실을 피해 피안(彼岸)의 세계로 놔 줘 버렸다.
한마디로. 기절해 버렸다.
털썩
탈진한 흑의인은 공터 바닥의 낙엽들 위로 쓰러지며 눈을 감았다.
나머지 흑의인은 동료의 폭행장면을 지켜보면서 환도를 든 채 떨면서 무력하게 서 있었다.
".... 큭..! 네놈.. 정체가 뭐냐!"
청년이 장난스런 표정을 지었다.
".. 그저, 약(藥) 좋아하고, 사제폭탄(私製爆彈)만들기를 좋아하는 평범한 무림인입니다!"
".....으... 으아아.. 네놈.. 두고 보자..!"
타다다닷
나머지 한 명의 흑의인은 악당들의 고전적인 대사를 남기며, 신형을 날려 공터 바깥으로 향했다.
후우우웅
신형을 날려 도망치던 흑의인은 등 뒤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오는 것을 들을 수 있었다.
무언가. 무거운 물체가 공기를 가르며 날아오는 듯한 소리!
흑의인은 불길한 예감에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퍼억
청년이 던진, 아까 흑의인의 검술에 의해 잘렸던, 남자의 다리 굵기만한 나무토막이 돌아본 흑의인의 얼굴에 격중했다.
"... 커헉.."
충격이 컸던 흑의인은 입에서 선혈(鮮血)을 토해냈다.
공터의 풍경이 점점 흐려져 갔다.
털썩
결국 나무 토막에 격중당한 흑의인은 동료 흑의인이 쓰러져 있는 곳에서 열 걸음 떨어진 곳에 쓰러졌다.
청년은 손을 뻗어 쓰러져 있는 흑의인들의 옷을 뒤지기 시작했다.
한 두번 해 본 솜씨가 아닌 듯 했다.
뒤적뒤적
짤그랑
청년은 은자(銀子)를 쓰러진 흑의인의 바지춤에 매달려 있는 천주머니에서 찾을 수 있었다.
청년이 뇌까렸다.
"... 흠.. 은자 닷 냥이라.. 우육(牛肉 : 쇠고기)을 오랜만에 먹을 수 있겠는 걸!"
<계속>

